3박4일간의 향수!
설연휴를 맞아 3박4일 일정으로 귀향길에 오르다. 아침을먹고 부산히 준비를 마치고 떠날려고 보니 점심때가 되었다.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우린 짐을꾸려 차에다 싣고 집을 출발 했다. 메스컴으로 들리는 교통상황을 들으니 상황이 최악의 상태였다. 강추위에 눈까지 폭설이 내린지라 상상이간다. 올림픽 대로를 들어서자 횅하니 도로가 확 뚤렸다. 한남대교에서 경부선을 타고 계속 내달렸다. 양재동I/C를 지나는데 전광판에 도로상황 안내판이 붉은글씨였는데 판교I/C 전부터 극심한 정체가 안성까지 이어진다는 교통상황 소식에 그려러니하고 달래내 고개마루를 넘자마자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한듯 했다. 해마다 명절때마다 겪는상황이려니 하고 가는데 이것은 아니었다. 100미터 가는데 30분이 걸리고 아예 꼼짝 마라다. 고민을 해야만 했다.
약3시간 정도를 움직였으나 판교 톨게이트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대로 라면 목적지인 고향 진안까지 오늘안에 택도 없을것 같았다. 국도를 뇌속에서 네비게이션을 상상해 보았다. 루시아도 동의 한지라 신갈에서 동수원I/C로 빠져 나갔다. 골목골목을 지나 동탄 - 오산 - 평택까지 가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폭설은 쏟아지고 국도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이곳까지 오는데 7시간30분이 소요되었다. 쉬지 못하고 핸들과 씨름을 하다보니 몸은 파죽처럼, 걱정스러울 정도로 폭설은 계속되고 있었다. 귀성길만 아니면 얼마나 낭만적인 눈이였는지 잠시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고 평택시내에 들러 '등촌샤브칼국시' 식당엘 들러서 맛있게 저녁을 때우고 폭설을 낭만적인 여유로움으로 생각하며 머나멀고 까마득한 고향을 향해서 출발, 4시간여 씨름하다 보니 남천안I/C 입구였다. 고속도로를 진입했으나 고속도로 상황도 여전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라 작심하고 가다보니 빙판도로를 아슬아슬 미끄러지면서 고향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2시30분 이었다. (1/24)
시골 고향길에 빙판진 도로상황!
1월25일 혼자서 주일미사 참례를 마치고 폭설이 내린 성당앞 주차장에서 사진 한장을 담았다. (진안성당 인데 대지가 2~3천평은 되어 보였다.) 부러웠다. 오늘 미사후에 우리성당 에서는 수녀님 송별식이 있는데 이곳 성당은 한국 순교복자 수도원에서 수녀님 두분이 동시에 새로오셔서 환영식을 하는것을 보았다)
모두가 불만에 하는말인데 왜 명절증후군 이랄까? 며느리들의 아니 여자들에 공통적인 불만사항이다. 시집에 도착하자마자 피로를 잔뜩 양어깨에 짊어진 채로 시작 된다 첨에는 오랬만에 만남 설레임으로 웃음꽃이 핀 상태로 지지고 부치고 하지만 한시간, 두시간, 하루 이틀, 쌓이는 스트레스는 명절이 끝나고 귀경길에 폭발한다. 이번 설날에는 최선을 다해서 같이 보조해 주고 마음이나마 함께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세 며느리가 다 모여 오랫만에 이야기 꽃을 피우며 정성을 다해서 제사음식을 만들고 있다.
존경하는 울 아버지!
(눈 덮인 시골 집 풍경1/26)
이제 늙으신 어머니! 항상 뭐 하나라도 더 챙겨서 보내느라 꺾여진 허리춤을 동여 메시고 자식들 앞에서 아직도 힘있고 모든게 부러울것 없으신것 같은데, 안타깝다 편히 모시지 못하는 내 자신과 우리형제들., 하지만 아직은 정정하시고 두분이 행복하게 지내시는것을 보면 흐믓하다. 또한 우리들도 부모님에 대한 효성은 모두들 제대로 하는것 같다. 아닐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생각해야 한다. 해마다 아니 뵐때마다 두분의 기력은 점점 쇠잔해지시는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올해 80 이신데 보청기를 하셨는데도 약간 어눌하시다. 안타깝다. 그 크신 아버지께서 걸음걸이 조차 불안하시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우리들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한번 짚어본다. 25년 전, 아버진 55세때 현재의 내 모습인데? 25년후에 내모습?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강산이 두번 반이나 변한것인데 알쏠달쏭 하다. 과연 25년후에 나의모습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