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 고지에 떨어지다!
존경하는 나의 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나를 보내주셨다.
1964고지에 이르러 한글문자를 익히게되고 철없이 인생고지를 오르기 시작해
숫자놀이도 익히도 꼬부랑(영어)글씨도 익히고 히라가나(일본어)도 조금은 배우게 되었다.
이렇게
유년기를 지나 1976~1982고지를 넘어
청년기를 맞아 최고봉을 오르기위해 셀파(배우자)역을
대신할 루시아를 만나 행복한 동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1983고지 9부(12월4일) 능선에서 우린 두손을 맞잡고 희망찬 웨딩 마치와 함께 행진을 하였다.
1984고지에서 우리의 영원한 후원자(딸)인 모니카를 하느님으로 부터 선물을 받다.
나의 배낭은 약간은 짐이 된것처럼 중량감이 있었다.
아직은 젊은 혈기라 전혀 문제되질 않았다.
그로부터 계속 산을 오르면서 식량조달 및 모든것을 남(직장)의 녹을 빌려야했다.
1989고지에 이르렀을때 주변의 많은 도움에 힘입어 어렵게 우리3식구가 안전하게 타고갈
마차(사업체)를 마련케 되었다.
처음 타보는 마차라서 가다가 고장도 있었고 정비불량으로 쉼도 있었다.
힘들게 암벽도 부딫치고 강을 건너보기도 하다가 또 가시덤불과 미로를 만나기도했다.
고통과 수많은 갈림길에서 길막힘이 있었지만은 서로의 격려와 기도속에서 희망을 잃지않고
열심히 오르는 도중에 무지막지한 산사태(IMF)를 만나 결국은 우린 산사태에 묻히고 모든것을 잃어버리다.
하지만 좌절치않고 수모를 무릅쓰고 우린 넝마주이 처럼 온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 인채로 몸을 추스리고
2000고지를 목표를 두고 다시 기어오르기 시작하다.
내인생
'四十以不惑'을 훌쩍넘어
어려움없이 2005고지를 향하다.
그동안 쌓아올린 인생등반에 모든 어려움과 고난의 훈장을 앞세워
어려움없이 고지를 향해 가던 중 암벽등산을 하는데 안전줄이 위험수위에 있는줄 모르고
안전줄(심형래의 형 심광래)을 잡은게 다 상하게된 줄일줄이야!
물론 떨어져 죽음으로 가는 절벽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옆에보니 칡덩굴(삼성전자)이 든든해 보였다.
칡덩굴이 아니었으면 과연 난 지금 어떻게 되었을지가 궁금하다.
자연의 섭리 또한 인간의 섭리도 마찬가지라 생각해본다.
하느님께서 주신 우주만물의 신비처럼 인간의 섭리 또한 그 분께서 상급으로 주신 기쁨에
찬미를 드릴뿐이외다.
현재의 나에게 내려주신 그 분의 인간섭리는 도저희 부인할수 없는 현실이기에
감사와 찬미를!
내인생
'五十以知天命'을 훌쩍넘었다.
지금쯤 생각해보면 내인생 지나온 세월 모두가
그분의 섭리라 할수있다.
모든 관계가 하느님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일상에서의 생활을 생각해보면 움직임과 말함과 모든게 죄 투성이다.
항상 보속하는 마음으로 생활속에서 되 뇌이곤 해본다.
1997 고지에서의 어려움을 보속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봉사를 하기 시작하다.
1998고지에 닿았을때 그분게 봉사를 맹세한다.
연령회 봉사를 시작하다.
교구청에서 교육을 받자마자 영안실을 들락거렸다.
첨에는 식은땀과 무서움과 악취에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늦은밤이나 비오는날 새벽녁에 전화벨을 받고 컴컴한 영안실문을 따고
시신이 오길 기다리는 심정은 머리가 쭈빛쭈빛!
숨소리도 제대로 못낸다.
어떤이는 오기전에 가족들의 배려로 어느정도 수습된 상태일때도 있지만
오랜병마와 시달렸거나 아님 조금은 난처한 모습으로 올때는 정말 싫어진다.
하지만 어찌할수가없다.
정성을 다해서 수습을 마친 후 냉동실에 안치한다 .
이틀째 대부분 염습을 한다.
가족들을 모아놓고 정중한 인사를 한 후 조문객들의 기도와함께
염을 시작한다.
먼저 기 입고있던 옷을 벗기고
死者의 근육을 풀고 난다음, 알콜솜으로 온몸을 깨끗이 닦는다.
한지로 몸을 감싼다음 삼베옷을 입힌다.
모든게 끝나면 관속에 안치를 하고 머리주변은 국화꽃으로 장식을 한 후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게한 후
무거운 관 뚜껑을 못질하고 끈을 맨 후 입관에절과 함께 끝이난다.
얼마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인지 해본자만이 알것이다.
물론 직업적으로 매일같이 되풀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내자신도 믿겨지질 않는다.
어떤이는 곱게가셔서 산 이처럼 느껴지고
어떤이는 너무도 험하게 망가져서 내 자신도 씁쓸해진다.
화장실에 가서 대충 쏘주로 먼저 씻은 후 다시 비누로 씻지만
찝찝한 마음은 쏘주한잔과 잃어버린다.
이렇게 어언 2005고지에 이르러 보금자리를 약15년만에
옮기다보니 자연스럽게 봉사직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동안 헤아려보니 약70여분의 영혼들은 돌보았다.
약 6년의동안의 봉사와 하느님의 은총은 이루 말할수없다.
다시한번 마음속으로 깊은 묵상과함께 감사와 찬미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