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이 있으면 사(死)가 있듯이,
영달(榮達)이 있으면 추락(墜落)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달과 추락이 동등한 무게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영달의 기쁨은 잠시이고 곧 잊혀지지만 추락의 고통은 길고도 마음속 깊이 자리를 한다.
추락을 견디어 내면 내공이 쌓이지만 못 견디면 생을 마감하는 자들도 있다.
대개 영달에서 추락으로 이어지기 까지는 천천히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얼마전 안팎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윤모 대변인 같은 경우는 마치 널 뛰듯 불과 몇개월 사이에
급격한 상승과 추락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달과 추락을 이렇게 압축해 보여주는 사건은 우리들에게 많은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벼슬의 무상함 이다.
단지 공직자 뿐만 아니라 직장내에서의 모든 이 들에게 던져지는 교훈이다.
차라리 벼슬(혹은 직장내에서의 고위직 승진)안하고 배고픈 논객 생활을 지속 했다면,
이러한 추락과 국제적 망신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 자기수양을 하고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공부를 적게 했던 사람이 비중있는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기름통을 안고 불곁에 있는것과 같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논객이란 자기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상관(傷官)이 발달한 팔자 란다.
그래서 관운이 약한 법이다.
관운이란 그 자리에서 당장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 올라도 꾹 참고 뱃속에 담아 두는데서 온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부침환해여구조(浮沈宦海如鷗鳥)라 '벼슬은 마치 파도가 험난한 바다위에 떠 있는 갈매기 처럼 부침이 심하다.
파도위에 앉아있는 갈매기를 보면 아슬아슬 하다.' 했다.
맹자에 '필관기란'(必觀其瀾)이라는 말이있다.
'흘러가는 물을 볼 때 반드시 그 굽이쳐서 휘어지는 대목을 보라' 는 뜻이다.
평탄하게 흘러가는 대목은 볼 거리가 없다.
급격하게 물살이 꺾일 때 한 세상 사는 여러가지 이치를 시사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교훈은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어리섞은 구업(口業)을 안지어야 하겠다는 다짐이다.
이 사건이 우리들에게 어떠한 멧시지를 주고 갔는지는 모두가 공감 할 것이다.
인생에 많은 것을 공부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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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이불일(滿而不溢). '효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과욕에 의해 '넘치는 것'을 조심해야하는 우리 인간에게 던져주는 중요한 경구입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지금이 계속 가야하는 시점인지 아니면 멈춰야하는 시점인지를 안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는 경제건 정치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멈춰야할 시점에 멈추지 않아 결국 비참하게 몰락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합니다. 모두 '넘치는 것'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었지요.
숭산 스님이 2004년 입적하기 전에 한 마지막 법문이 소개되어 있더군요.
"화와 복은 스스로 받고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니 고난중에도 마음을 비우는 사람은 평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복이라고 다 좋은가요.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도 있는데 복도 너무 많으면 복 받느라 걱정이 많아집니다. 그러니 오유지족(吾唯知足), '나는 오직 족함을 알 뿐'이라고 했으니, 제 분수를 알아 욕심을 내려놓고 쉴 것이며, 내 앞에 닥친 이 일, 이 순간,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자체로 삶은 이미 바른 길로 들어선 것이 됩니다."
가득 차 넘치는 것...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해야할 마음의 자세입니다. |